[삶의 뜨락에서] 유람선 페스티벌에서
미국 생활이 익숙해질 무렵 친분이 있는 이웃과 카리브해 일곱개의 섬을 하나씩 돌아볼 수 있는 페스티벌(Festival)이라는 유람선 여행을 함께 가기로 뜻을 모았다. 승객들이 자는 동안 항해를 시작해 아침에 일어나면 새로운 섬에서 하루 동안 관광을 즐기다 저녁에 유람선으로 돌아오는 여행이었다. 그중에 여자들이 가장 관심이 컸던 곳은 쇼핑으로 유명하다는 세인트토머스 섬이었다. 마침내 그 섬에 배가 도착한 날 나와 이웃인 C부인도 두 아이를 앞세우고 면세점이 있다는 도심으로 서둘러 갔다. 면세점은 관광객들의 심리를 잘 아는 듯 많은 유럽제 고급 상품을 저렴한 가격에 팔았고 세금도 없었다. 우리는 쇼핑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있었다. 그때 한 아이가 “엄마 우리가 타고 온 유람선이 오후 2시에 떠난다고 했지. 그리고 두 번 5분 간격으로 고동을 울리면 배의 문을 닫는다고 했잖아”라며 조급해했다. 그래, 그렇구나! 급히 택시를 타고 유람선이 있는 곳으로 가고 있는데 첫 번째 고동 소리가 들렸다. 유람선이 정박한 해변이 빤히 보였지만 차량정체로 택시는 꼼짝도 못 했고, 겁먹은 아이들은 훌쩍이고, 운전사는 어쩔 도리가 없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나는 마음속으로 하나님께 도움을 청하는 SOS를 보냈다. ‘우리를 도와주세요. 하나님!’. 그러나 하나님은 여전히 침묵하시는 듯한데 갑자기 ‘Money talks’란 말이 떠올랐다. 그리고 운전 기사에게 다급하게 말했다. “아저씨, 택시요금이 25달러라고 했지요? 두 배로 지불할 터이니 저 유람선으로 빨리 가주세요”라고 말이다. 그 말을 들은 운전기사는 갑자기 잠에서 깨어난 사람처럼 택시를 앞뒤로 조금씩 움직여 간격을 만든 다음 차를 왼쪽으로 틀어 좁은 골목으로 들어갔다. 필경 그에게는 익숙한 뒷골목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택시는 시간에 맞춰 유람선 앞에 도착했다. 그때 마침 두 번째 고동 소리가 울렸고 막 선박의 문을 닫으려는 순간이었다. 만일 그때 선박 문이 닫혔으면 우리는 별도리 없이 항공편으로 마이애미로 돌아가야 할 상황이었다. 휴대폰도 없던 시절이라 선박에 남아 있던 남편들은 우리의 행방을 모르고 애를 태우고 있다가 택시에서 내리는 아슬아슬한 광경을 갑판 위에서 발을 동동 구르면서 지켜보고 있었다. ‘Money talks’ 또는 ‘Money works’ 는 돈이 가진 위력을 표현하는 말이다. 이 말을 들으면 어떤 사람들 눈앞에는 커다랗게 확대된 지폐가 보일지도 모르겠다. 그런가 하면 어떤 사람들에게는 ‘Money talks’라 속삭이는 자애롭고 전능하신 그분의 모습이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황진수 / 수필가삶의 뜨락에서 페스티벌 유람선 유람선 페스티벌 유람선 여행 money talks